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틀란트 해전 (문단 편집) == 매체에서의 등장 == 1993년 Software Sorcery 라는 회사에서 DOS용 CD-ROM 게임으로 나온 적이 있다. [[파일:jutland_1.png]] 일본 인터넷에서 유행한 가공전기물 《바다 독수리의 연회》에서는 비티의 활약으로 유틀란트에서 독일 함대가 전멸하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그 이후 독일의 조기항복과 세계적인 [[거함거포주의]]의 증대와 기타 사정으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태평양에서 함대결전이 일반화 된다. 대체역사소설 [[타임라인-191 시리즈]]에서는 단지 언급으로 독일 북양함대와 영국 대함대가 몇번 교전을 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오히려 유틀란트 해전의 패러디는 영국・프랑스 연합함대와 북부의 함대가 태평양에서 교전하는 "세나라 해군의 전투"이다. 여기서는 북부의 함대가 영불 함대를 전멸시키기 직전 갑자기 난입한 일본 함대로 인해서 전략적 승리에 실패하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이 해전을 본격적으로 다룬 국문도서는 없다. 대체역사소설 [[1904 대한민국]]에서는 한국의 지원을 받은 독일과 영국이 붙는다. 독일 해군은 한국의 도움을 받아 더 긴 사정거리와 더 정확한 명중률로 무장한 신형 함포를 달고 영국 대함대와 함대결전에 나선다. 영국 해군은 사거리와 명중률의 열세로 얻어맞기만 하고, 독일 함대에 포위섬멸 당한다. 영국은 이 전투에서 무려 해군력의 7할을 상실하여 북해의 제해권은 물론 가까운 아일랜드 해헙의 제해권마저 내주고 만다. 결국 영국은 전 국토 요새화와 방어에 전 국력을 기울이고, 영국을 지원할 항로가 위협받게 된 미국은 [[위안스카이]]가 통치하는 황국이 한국을 치도록 유도했지만 계획은 사전 공작 단계에서 한국에게 발각, 도리어 한국의 보복 명령을 받은 일본 연합함대가 [[하와이]]를 공격한다. [[Hearts of Iron 시리즈]]의 MOD인 [[카이저라이히: 대전의 유산]]에서는 설정상 1918년에 2차 유틀란트 해전이 일어난다. 독일 제국은 미국의 참전을 두려워해 1917년 [[무제한 잠수함 작전]] 재개를 하지 않으며 유보트 대신 대형함 생산에 주력했고 대양함대의 환상이 깨진 상황에 봉쇄는 여전한지라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지금까지 모았던 배들을 일거에 투입해 영국 왕립해군과 영혼의 한타를 벌인다. 그 결과 1채 전투의 규모를 압도하는 피튀기는 혈전이 벌어졌고 특히 독일은 [[도이칠란트급 전함]] 2척, [[헬골란트급 전함]] 1척, [[카이저급 전함]] 1척, [[바이에른급 전함]] 1척으로 전함만 총 5척이 침몰되는 피해를 입는다. 1차에서 전투는 독일이 승리하고 전략적으로는 영국이 승리했던 것과는 반대로 2차에서는 전투는 영국의 승리였으나 쌍방의 손실이 너무 심해 이를 계기로 대독 해상 봉쇄를 완전히 포기하면서 전략적으로는 독일이 거대한 이득을 취했다. 전쟁이 끝난 이후에는 여기서의 교훈으로 모든 국가가 거함거포주의에 집착하며 역대급 드레드노트 경쟁이 펼쳐졌고 해군 군축 조약 등은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전투 중 영국 항공기의 뇌격으로 [[바이에른급 전함]] 3번함 작센이 소파되는 사건이 발생했던 것으로 영국 해군의 소장파에서 항공모함으로의 교리 선회를 주장했지만 묵살당했다. 도를 넘는 드레드노트 경쟁으로 국력이 소모되며 1925년 영국 혁명이 일어나 브리튼 연방이 세워지고 왕실 인사 및 보수파는 캐나다로 피난했다. 1936년의 게임 시작 시점에는 세계 최강 독일 제국이 거함거포주의를 맹신하고 도전자 브리튼이 항공모함으로 선회한 상태에서 일본과 미국 역시 항모 중심 교리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대체 역사 소설 [[매국노의 원수 자식]]에서는 '대함대를 보조하되, 북해에서는 손을 떼고 지중해 순찰을 해달라'[* 당시는 그 유명한 [[갈리폴리 상륙작전]]이 실패하고 몇 개월 뒤였다. 즉, 말이 순찰이지 자기네들이 실수한 거 대신 처리해달라는 소리다.]라는 영국 해군의 태도에 분노한 미국 해군 원정 함대가 주인공 이대일의 아이디어로 '독일 놈들이 어디로 가든 간에 항구로 들아올 거니까 기다렸다가 공격하자'라는 작전을 시행하는 전개가 추가됐다. 당시 미국 해군의 전투함은 공격력, 방어력은 몰라도 기관 출력이 딸려서 정상적으로 싸운다면 큰 피해를 입을 것이 분명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독일 해군은 이미 영국 해군과 한판 붙으면서 기관이 제 힘을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기에 속도에서 밀리는 미국 해군도 큰 어려움 없이 독일 해군에게 큰 피해를 입히는 것에 성공했다. 독일 함대는 영국과 미국 두 나라의 해군에게 연속으로 얻어맞아서 최신형 주력 전함을 10척 이상 일는 등 전체 함대의 1/4 조금 넘는 함선을 잃고 말았다. 카이저 마리네의 궤멸로 이어질 정도는 아니어도 평생 후유증이 남을 정도의 중상이었으며 두번 다시 해상 봉쇄선 돌파는 엄두도 못내는 상황이 된 것. 이에 반해 미국 해군은 기뢰나 아군 오사로 인해 몇몇 함선이 대파된 것을 제외하면 피해는 전무했다. 즉, '재주는 영국이 부렸지만 공적은 중간에 끼어든 미국이 낚아챈' 상황이 된 것. 한편 전투가 끝난 후 이런 상황을 알게 된 영국 사회는 경악해서 '왜 미국 해군과 협력하지 않았냐', '모든 면에서 우위인 우리 영국 해군이 왜 이렇게 큰 피해를 입었냐' 등으로 엄청나게 시끄러워졌다. 반대로 미국 사회는 이 대전과에 대환호성을 질렀지만.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